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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거

간만의 AI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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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지구에서 일어났는지는 이후 이들의 기록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인류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한 기후위기, 전염병의 확산, 아니면 인류 탓은 아닌 지각변동, 소행성 낙하 등등 여러가지 이후의 설은 있지민 분명한 사실은 이 때 지구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여러 집단이 자신들의 역량을 쥐어 짜 엄선되어 선발된 과학자, 기술자, 군인, 다양한 분야의 예술 및
지식인들 약 2000여명을 각종 지구 생물들의 종자를 싣고 아직 완전한 실험을 거치지 않은 알큐비에르 드라
이브(초광속 우주비행 엔진)과 이를 컨트롤할 AI가 탑재된 거대 우주선에 탑승시켜 태양계와 인근한 다른 태양계의 사람이 살 수 있을 법한 행성으로 이주시킨다는 모험을 벌이게 된다.

우주선은 재앙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인류 문명을 뒤로 한채 우주로 향하고 마침내 알큐비에르 드라이브의 시동을 건다. 이는 이렇게 거대한 우주선에서는 제대로 실험해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알큐비에르 드라이브는 작동했다. 그러나 댓가는 컸다. 엔진의 과열, 오작동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운데 우주선 선내는 화재와 방전, 폭발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때문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이 우주선을 통제하던 AI는 이 우주선의 비상사태와 씨름하며 그 자체의 여러 오류 속에서도 간신히 목적지까지 우주선을 이끌게 된다.

목적지인 행성까지 도착했지만 이를 지켜본 우주선의 생존자들은 망연자실해졌다. 대기중 산소는 생물이 살아가기에는 턱도 없을 정도로 희박한 데다 유독 가스로 차 있기까지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물로 된 바다는 있었지만 지상은 화산, 지진으로 끊임앖이 흔들렸으며 생명이 살 만한 가망은 그리 없어 보였다.

우주선의 생존자들은 이 힘겨운 환경 속에 그나마 안정된 대륙의 일부에서 유독한 대기에서도 살 수 있는 식물을 심어 대기 중의 산소량을 늘리고 더 나아가 행성 자체를 인류가 살 만한 장소로 만들고자 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수없는 희생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드디어 간신히 생물이 살 만하게 행성의 환경을 개조하고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이들에게는 새로운
어려움이 닥쳤다. 인구가 늘어난 만큼 이들을 다스릴 새로운 체제가 필요했지만 어떤 체제로 다스려야 할 지는 개척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하고 결국 분쟁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결국 이들은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상과 의견으로 갈라서 자신들만의 나라를 행성 각 대륙에 세우게 된다.

우주선 선원들의 지휘부 주류는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했지만 이들은 민주주의와 시장이 모든 문제의 답이 되지는 못했다는 과거 지구의 사례를 떠올려야만 했다. 그 결과 그들은 우주선에 탑재되았던 AI를 이상적인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사회를 통제하는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웠다. 이들이 세운 나라는 겉으로는 자유의지와 자유시장, 민주주의의 세계였으나 실은 국민들의 선택은 AI가 제시하는 여러 답 중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유도되었고 사실상 이 나라는 국민의 의지가 아닌 AI의 의지에 의해 이끌어졌다. 미디어를 통한 교묘한 “우민화“를 통해 국민들은 자신들의 “자유 의지”가 나라를 이끈다고 믿지만 이들의 의지란 AI가 유도해 낸 것일 뿐이다.

또 다른 지휘부의 일파는 마르크스의 이상대로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믿고 민중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지구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민 개개인의 의견과 사상은 철저히 통제되었고 통치는 관료들과 AI에 의해 독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나라에서 인간 개인의 자유 의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민의 뜻”을 가장한 관료집단의 결정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상적인 사회란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정점에 서서 우수하게 단련된 인민과 그 인민들로 이뤄진 막강한 군대가 이룬다고 주장하는 일찌기 지구에서의 파시즘과 군사독재가 부활하게 된다.

이 나라의 독재자는 일찌기 과거 지구의 악명높았던 독재자가 꿈꿨던 우생학적 인종주의와 군국주의에 심취
하여 유전자 편집 기술을 악용해 강건한 욱체의 군대와도 같은 국민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에 생기는 부작용은 독재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생학적으로 창조된 국민들은 폭력적으로 변하는 등 유전적 결함에 시달렸다. 국가는 군비에 너무나 많은 지출을 쏟아붓다 보니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그 와중에도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을 부여잡기 위해 끊임없이 허물어져 가는 경제 속 강대한 군대와 우수한 민족에 집착했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신”의 영감을 받았다는 자가 왕위에 오르고 절대왕정을 행사했다. 다행히 그의 땅에는 풍족한 자원이 있었고 열정적으로 그를 숭배하는 국민들과 함께 국가를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신과 그의 대리인인 왕의 절대 명령에 이끌어지는 신성한 왕국의 뒷면에는 수도 없이 많은 민중의 희
생이 있었고 왕국 곳곳에서는 신과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자들을 찾아 처단하는 종교재판관들이 공포 정치를 펴게 되었다. 영혼은 신전에 바치는 동전 한 닢과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고 불신자들은 장작더미 위에 묶여 화형되었다.

일단의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의 진보와 이를 통한 특이점으로의 도달 만이 인류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세운 이 행성 사상 최고 기술력으로 이뤄진 도시국가는 그야말로 완전한 미래 세계 그 자체였다.

완성도 높은 유전자 편집과 사이버네틱스의 광범위한 보급을 통한 인간능력의 놀라운 확장, 연장된 기대수
명, 자연환경의 일각마저 통제 가능한 기술 등은 어쩌면 이 도시국가야말로 인류가 도달해야 할 이상낙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나라를 다스리는 과학자들-기술관료들은 “인간적”인 것과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갔다. 인간의 모든 오욕칠정 같은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했고 이상적인 인간이란 이 모든 것을 기술의 힘으로 넘어선 존재여야 했다. 그들은 이러한 존재의 창조와 전파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이를 위한 흉흉한 실험들이 이뤄쟜다.

이 나라에서는 빈곤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뭏든 이들은 과거의 지구에서처럼 국제기구를 만드는 등 어쨌든 타협을 하기도 하고 분쟁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이들의 국제기구 회의에서 한 의제가 전격적으로 던져졌다.

“지구를 재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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